한손의 아름다움, 두 손의 부끄러움 13745
  2008-09-26

 -화가, 외팔이 골퍼 박철홍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전화 한통이 왔다.

“이 선생 나 박철홍입니다”

첨엔 잠깐 누굴까 했지만 바로 반가움으로 그리움으로 변했다.

화가 이지 외팔이 골퍼로 그 유명한 박철홍 선생이었다.

너무 있고 산 것이 아닌가 싶어 죄송하고 미안했다.

그와 다시 통화가 돼 내년엔 골프를 소재로 한 시화전과 다양한 행사를 하기로 했다.


 
그 때문에 내  인생은 정말 많은 변화가 왔다.

중학교 때 교과에서 읽었던 가슴 찡한 수필 한편이 생각난다.
 
'한 눈 없는 어머니'란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주인공은 한 눈 없는 어머니를 늘 부끄럽게 생각했고 그런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남의 어머니처럼 여기며 성하지 못한 엄마를 늘 회피했던 아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뒤돌아 본 어머니는 다른 여느 어머니처럼 늘 자식을 위해 희생적인
평범한 어머니였다.

남의 어머니처럼 성한 두 눈도 아닌 한 눈으로 자신을 훌륭하게 키워준 어머니가
그제서야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뒤늦게 어머니에게 효도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그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화가 박철홍 씨를 만나면서 내 삶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됐다.

소설을 쓰는 심석구 선배를 통해서 알게 된 박철홍 씨는 누구 못지않은 골프 마니아다.

그는 인천지역에서 그림을 그리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화가이자 골퍼이다.

젊었을 때는 태권도 국가대표를 지낼 만큼 운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와 첫 만남은 인천의 화실에서 였다.그의 화실을 찾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의 화실은 또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림은 어떻게 그렸을까? 여러 가지가 궁금했다.



찾아간 화실은 예상대로 어수선했다.

물감이 덜 마른 미완성의 유화부터 스케치만 해놓은 화판, 여러 가지 도구들,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길을 끄는 그림이 하나 있었다. 골프장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었다.

화폭 안에서는 안개가 자욱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회색빛과 그 사이로 비추는 아침햇살의 영롱함 뒤로 금방 살아나 튀어나올 듯한 나무들과

산들이 신비하게 서있었다. 골프장 그림을 한창보고 있자 마음이 편안해 왔다.

“맘에 드세요?”

“그럼요. 골프장 풍경만 봐도 미소가 떠오르네요.”

필자가 골프장 그림 앞에 오래서 있자 그는 은화삼 골프장에 갔다가 안개와 햇살이 가득한
골프장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그대로 화폭으로 옮겼다고 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그림은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그려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왼손잡이가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분명 그는 오른손잡이다. 그의 오른손은 점퍼 안에 있었다.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 불편한 손으로 그것도 왼손으로 골프장을 그려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놀라움은 그림에서 끝나지 않았고 80대 중반 스코어를 내는 골퍼라는 점이었다.



그는 20대 후반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쓸 수 없게 됐다.

건장한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였던 그는 끊임없이 나락하는 자신을 학대하면서
술과 담배로 나날을 보냈다.

이 세상이 끝난 것 같았던 그에게 새 삶의 끈을 이어준 것은 다름 아닌 골프와 그림이었다.

쓸 수 없는 오른손에 대한 절망으로 한없이 빠져들고 있을 때 그의 가슴 안으로 그림이 들어왔다.

그림은 대학교 때 전공을 했었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쉬웠다.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붓을 잡았다.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 때문에 의도한 바대로 그림이 안 될 때는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림에 마지막 삶을 걸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그만의 그림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한 폭, 한 폭의 그림을 완성시킬 때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왜 살아야하는지를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그림에 빠져 살던 어느 봄날, 우연치 않게 친구가 근무하는 골프 연습장을 찾았다.

마침 친구는 약속시간보다 늦었고 연습장은 한낮이라 한산했다.

눈에 들어온 연습용 골프클럽을 보는 순간 그는 별안간 그것을 쳐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러나 오른손을 쓸 수 없기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그는 총총히 발걸음을 옮겨 아이언을 집어 들고 볼을 툭 쳐보았다.

놀라웠다. 볼은 연습장의 그물망을 향해 날아갔고 그것은 마치 태권도 국가대표 시절의 자신이
힘차게 뻗었던 발놀림과 닮아 있었다.

박철홍씨는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왼손으로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삶이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그는 그 자리에서 골프채를 잡았다.

다행히 골프는 왼손으로 그립을 잡고 오른손은 보조역할을 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골프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는 1년 만에 80대 스코어를 냈고 홀인원도 기록했다. 멀쩡한 두 손으로도 해내기 힘든 기록들이었다.
그는 한술 더 떠 기회가 되면 프로테스트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한다.



말 그대로 아름다운 도전이다.

박철홍 씨는 가끔 골프장에서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은 한손으로 골프를 쳐도 마냥 행복하기만 한데 저 멀쩡한 두 손으로 골프를 치면서
왜 화를 내는지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멀쩡한 두 손으로 그동안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고 핑계 거리만을 먼저 생각해온 나 자신이 아니었던가.

골프장에만 가도 행복하다는 박철홍 씨야 말로 완벽한 골퍼다.

두 손을 가진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그는 한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골프를 친다. 그것도 평균 80대 스코어를 내고 있다.

 

얼마 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화실도, 강의도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골프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싶은데 자신의 손을 보고 모두 거절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의 장애는 눈에 보이는 차이일 뿐이다.

오히려 골프장이나 연습장에는 더 많은 마음의 장애자들이 있다.

박철홍 씨의 도전에 나는 힘찬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골프장에 서면 항상 그가 생각난다.

한손으로 그려내는 아름다운 골프장의 이미지와 한손으로 탄주시키는 하얀 골프 공을 생각하며
노력하지 않는 두 손의 부끄러움을 조용히 반성해 본다.

10월 중순엔 그와 골프 라운드 약속까지 해놨다.

그가 극복해 나가는 골프장에서의 멋진 샷을 함께 하며 한껏 흐드러지게 행복한 웃음을 쏟아내야 겠다.

그리고 내년 그와 함께 골프관련 글과 그림, 시와 화폭을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겠다.

또 그를 통해서 삶은 참 살아볼만한 것이고 또 도전해 볼일 이라는 것을 아주 겸허하게 생각하고 싶다.

 에이스
늘 감동적이고 배울수있는글 감사함다
박철홍씨 넘 멋있네요
골프를직업으로 하실수있으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모두에게 꿈을갖을수있고 힘이되주리라생각됨다
마음에그림도 화폭에담아주세요
그리고 내년 계획에 나도 동참할수있다면... ㅋㅋ
좋은글 다시한번 감사드림다

 10-04 /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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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골프유닷넷(golfu.net)
전국 골프장예약/골프투어/쇼핑몰/칼럼 : 02-572-0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