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또 하나의 아버지-재치문답, 유쾌한 응접실 한국남 박사님을 추억하며 13833
  2007-12-20
한국의 임어당이라고 하면 단연 한국남 박사를 떠올릴 것이다.
최소 40대 연령층 이상은 한국남 박사의 이름 석자는 들어봤을 것이다. 산부인과 전문의로 TV가 크게 보급돼지 않았을 시절 라디오 전파를 타고 우리 국민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전해줬던 분이시다. 국민소득이 겨우 100달러이던 시절 배고프로 희망없는 우리 국민들을 해학과 꿈을 전해줬던 라디오 천사 한국남 박사님!
 
동아방송 故장기범 아나운서(지금은 교수님)의 멘트로 시작되는 ‘재치문답’시간이 돌아왔습니다로 시작되는 방송엔 두꺼비 안의섭(만화가), 한국남 박사님이 고정 출연자 이셨다. 뿐만아니라 전영우 교수와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한 ‘유쾌한 응접실’서도 유머와 위트를 끊임없이 날리셨다.
지금의 남희석, 유재석, 김구라, 박명수와는 비교가 안될만큼 박학다식하고 패러독스가 있는 화려한 려구를 날리셨던 분이시다.
 
그랬던 한국남 박사님이 12월 2일(일요일) 점심 식사를 하시고 방에서 혼자 돌아가셨다. 중앙대 병원 영안실을 찾았다. 박사님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했다. 항상 넉넉한 웃음과 사랑으로 맞아 주셨던 박사님이 너무도 외롭게 떠났다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 한참을 그렇게 영정 앞에 서있었다. 한국남 박사님은 내게 있어 고등학교 선배시자 아버지 그 이상의 존재였다. 아니 어쩌면 친아들보더 더 친아들처럼 대해 주셨다. 필자가 골프를 하게된 것도 바로 한국남 박사님의 추천때문이었다. 남자라면 그것도 골프기자라면 당연히 골프를 해야한다고 하셨다.
 
한시대를 풍미하셨던 박사님이 떠나는 그날 정작 박사님을 장지로 모시고 갈 6명이 없었다.
누가 그랬던가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있어도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없다’고...
정말 쓸쓸했다. 겨우겨우 박사님을 모실 6명이 만들어 졌다. 6명중 한명이 모자라서 영구차를 운반할 기사까지 합세해야 했다. 인생사 일장춘몽이라고 했던가 살아 계실 때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방송관계자 출판사, 기획사, 기자, 유명인, 지인들은 모두 어디를 갔을까.
필자는 박사님의 맨 앞에서 관을 들었다. 눈물이 쏟아져 슬픔을 목젖으로 밀어 넣으며 박사님을 모셨다. 전날까지 추웠던 날씨가 그날따라 햇살이 따듯했고 벽제 화장터는 그 어느때보다 눈부시고 화사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박사님이 더 뜨거운 불 속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파란만장했던 당신의 모든 것을 다 가슴에 안고 저 작은 어둠과 불속으로 들어가고 계셨다. 모든 것이 끝나고 돌아서는데 아들 한상준(성형외과 전문의)박사가 내 손을 잡으며 잘 가셨을 것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더 이상 박사님을 아니 또 다른 아버님을 볼 수 없는 설움에 참았던 슬픔을 소리내어 토해냈다.
 
“이국장 우리 상준이랑 잘 지내지?”
“네?”
“이국장 보다 나이는 많지만 세상물정 몰라 그러니까 친구처럼 잘 지내.....”
박사님은 늘 큰아들 걱정을 하셨다. 아니 날 아들 그 이상이라면서 큰 아들을 부탁하곤 했다.
올 봄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에서 쓸쓸하게 등굽은 모습으로 환<
 라디오스타
나도 한박사님 팬이었는데...
명복을 빕니다.

 03-21 / 23:11
 낭만자객
놀랍군요. 한시대를 풍미했던 분이 너무 조용하게 가셨군요. 명복을 빌며 언제 이런 우리의 낭만을 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요. 안의섭, 양주동, 조풍연, 한국남.....

 01-07 / 10:21
 옛추억
그분이 돌아가셨군요. 우리가 힘들때 웃음과 희망을 줬던 박세리 같은 분이.. 골프도 좋아하시고 사랑하시고 고인의 명ㅂ복을 빕니다.
그런데 아무도 몰랐다니 아 슬프네요ㅗ...


 12-29 /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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